최근 읽게 된 책 중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저서가 있다.
얼핏 제목만 들으면, 철학서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자화상에 숨은 화가의 내면 읽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유명화가들의 자화상을 통해 당시 그들의 심리상태와 당시의 미술흐름을 읽게 만드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총 31명의 화가들의 자화상을 소개하면서, 그 자화상이 어떤 상황에서 그려졌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예를 들어본다면, 맨 처음 나오는 인물은 빈센트 반 고흐다.

고흐는 잘 알려진 대로 1888년 12월 23일, 스스로 귀를 잘라서 창녀에게 주고 보름에 걸쳐 치료를 받는다.
동생 테오의 결혼과 동료 고갱의 말다툼이 그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그 이후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을 그렸다. 두툼한 털옷을 입고, 붕대를 감은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은 말 그대로 파격이다! 사실 필자는 여러 번 그 그림을 인터넷이나 책에서 접했지만, 별 감흥을 느끼질 못했다.

왜냐하면 고흐는 나에게 너무나 먼 나라의 사람이었고,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무지했다.
그저 나에게 고흐는 살아있을 때는 불행하게 살았고, 죽고 나서야 인정받은 정말정말 불행한 화가로 인식되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고흐를 새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외투에 그려진 수직선은 상승의지,
즉 이런 고난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하고, 자화상을 너무 많이 그린 나머지 거울을 보지 않고도 자신을 그려낼 정도로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 등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그들과 교감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누구인가?>는
겨우 300페이지에 무려 31명의 화가들의 자화상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깊이는 무척 얕은 편이다.

또한, 당시 시대와 화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저자의 상상력으로 메꾼 부분도 있어서 ‘사실성’에서 조금 떨어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인물이 아니다보니 필력이 아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인가?>는 꽤 읽어볼 만한 책이다. 20대의 쇠라의 광학적 회화에 열광하던 시기에
폴 고갱은 자신만의 기법을 선보이기 위해 고심했으며, 1919년 죽기 얼마 전에 자화상을 남긴 모딜리아니는 특유의 눈동자 없는
자화상으로 아직 접지 못한 화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회환을 남겼다

그런가하면, 1893년 49세의 나이로 화가로 데뷔한 앙리 루소는 일부러 자신의 발이 떠 있는 듯하게 그리고, 기구와 범선 등을
그려서 ‘화가로서의 상승의지’를 깊게 다짐한다.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그려,
재능만 믿고 방탕했던 젊은 날의 자신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반성의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31명의 화가들은 각기 자신의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예술가로서 출구를 찾고자 했다. 자화상은 때론 타락한 그들이,
실패한 그들이, 성공한 그들이 새로운 자신의 출발점을 삼고자 그린 스스로의 의지이자 ‘결의’ 그 자체였던 셈이다.

이 포스팅을 읽는 이들은 왜 필자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소개하는지 의아할지 모르겠다. 오늘같이 스마트폰이 진화를
거듭하고, 클라우드 같은 궁극의 서비스가 도입되는 시점에선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같이 고도로 기술이 발달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주체성을 잃기가 매우 쉽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사회가 엄청나게 바뀌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스스로에 대해
‘엄청난 회의감’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렇지만 ‘기술’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술을 무시하거나 부정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술만 따라가면 ‘본질’은 잊어버리기 쉽다. 예를 들어 아이폰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폰이란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앱스토어이며, 클라우드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은 ‘구름’이 아니라, ‘클라우드’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묶이는 모든 정보의 총집합이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보고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은 인문학에서 비롯된다. 결코 공학이나 기술에 대한 관심으로는
세상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낼 수가 없다. 오직 ‘고민하는 힘’과 상상력만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시대를 바꿀 수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스티브 잡스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세상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등등.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기술에 대해선 동료인 스티브 워즈니악에
비하면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PC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지 본능적으로 파악했고, 위기에 빠진 애플에게
아이팟과 아이폰 그리고 아이패드 같은 제품들을 출시하게 만듬으로써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바꿔놓을 수 있었다.

그건 그가 ‘인문학적 상상력’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하다. 한마디로 사업가적 기질과 예술가적 기질이 합쳐져서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변혁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나오길 원한다면, 그의 자서전을 읽거나, 애플 관련
서적을 읽을 것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같은 책들을 찾아서 읽어야만 한다.

더더군다나 우리 사회는 경쟁을 강요하고, 자기계발서나 경제관련서를 읽으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적이고 단선화 시키는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해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철학 없이 기술에만 의지한다면 우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부는 바람에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굳이 스티브 잡스 같은 위대한 사업가를 들지 않더라도, <나는 누구인가?>를 읽으면서 개개인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에 대해
조금이나마 고민하게 된다면, 이 책을 접한 의미는 충분히 다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나는 누구인가?>는
훌륭한 미술 입문서이자, 인문교양서라고 감히 평가하고 싶다. 
(11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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