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스마트폰 있어? 
물론 있지! 날 뭘로 보는 거야? 나 카카오톡도 해!
그럼 태블릿도 있겠네?
태블릿? 새로 나온 초콜릿이야? 
세상에! 그럼 너 아이패드2도 모르겠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다보니 한 가지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지구의 자전속도가 얼마라고 하던가? 적어도 세상은 시속 백킬로 넘게 달려가는 것만 같다.
 



한 손 안에 살포시 잡히는 스마트폰을 통해 간신히 유행을 따라갔나 했더니 이번엔 태블릿이란다.
사과마크 찍힌 아이폰은 알겠는데, 아이패드라니 그건 또 뭐지? 더구나 사람들이 모두가 아이패드2를 외친다.
영화 1탄도 아직 못봤는데 2탄이 끝내준다는 사람하고 도저히 대화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스마트하니까 말이다. 그까짓거 단숨에 알아주마!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치는 아이패드2.
그걸 쓰면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알아보자.

아이패드2, 써보면 이 점이 좋다.

1) 외모가 끝내준다!




어느날 소개팅 나갔는데 부시시한 머리에 구겨진 셔츠입고 온 남자가 날 보고 웃는다면?
오, 마이갓! 그 남자가 숨겨진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일단 비호감이다.
아이패드2는 일단 디자인이 뛰어나다. 조잡하고 싼티나는 플라스틱이 아닌, 알루미늄을 깎아서 만든 바디에 검은 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척 보기에도 이건 간지남이다!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돋보일 수 있다.
게다가 슬림하고 가볍기까지, 오! 이건 꼭 사야한다.


2) 빠른 속도와 듬직한 안정성. 

현대는 스피드 시대다. 단 1분이라도 쓸데없이 기다리는 데 소비하기 싫다.
그런 면에서 아이패드2는 언제나 내 명령을 척척 따라주며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 또한 안정성이 뛰어나 느려지거나
바이러스에 걸리지도 않는다. 커다란 화면으로 잡지를 읽거나 웹서핑을 하면서 쾌적함을 느낄 수 있다.
이 남자, 외모만 있는 게 아니라 능력도 좋다!




3) 뛰어난 예능감과 오래가는 배터리.

잘생기고 능력있는 남자라도 같이 있어서 심심하다면 안되겠지? 그런 면에서 아이패드는 예능감도 뛰어나다.
전용 앱을 이용하면 음악을 만들 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 그 뿐인가? 직접 찍은 동영상을 편집해 멋진 영화도 만들수 있다.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는 것만으로 음악가와 영화감독이 되어보자.


아이패드2, 이건 좀 불편하다.


1) 화소수가 떨어지는 전면 카메라.

부모에게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한다? 와아! 재벌 2세인가 했더니 그 기업이 사실은 종업원 열 명의 중소기업이라면?
가벼운 실망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폰4에 탑재된 카메라의 좋은 화질과 높은 화소를 기대하고 아이패드2로 사진을 찍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아이패드2의 카메라 성능은 훨씬 떨어진다. 물론 아이패드2의 카메라도 찍은 사진을 가공하거나 동영상을 찍는 능력은 뛰어나다. 실속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 실망이다. 왜 나중에 나왔는데 카메라가 아이폰4보다 못하단 말인가?
 




2) 선을 연결해야만 음악과 동영상을 넣을 수 있다.

세상은 날이 갈 수록 편해진다. 이제는 무선 와이파이로 인터넷도 마음껏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패드는 어째서 음악이나 동영상을 넣는데 컴퓨터가 필요할까? 게다가 선을 연결해야만 가능하다.

친구 말로는 안드로이드폰은 무선으로도 음악과 동영상을 자유롭게 넣을 수 있다고 하던데. 아
이패드2는 어째서 그런 편리한 기능이 안되는지 궁금하다.
이번에 애플에서 나온 아이클라우드가 제대로 지원되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안되는 게 안타깝다.
 

3) 물과 충격을 조심하라. 살벌한(?) 애프터서비스.

'이게 최선입니까? 정말입니까?' 라고 말하던 누군가를 기억하는가?
아이패드는 분명 제품 자체로는 명품에 가깝다. 디자인과 성능이 편리함과 함께 잘 어우러졌다.
그런데 이런 명품은 성격이 그리 좋지 못한 재벌 2세 도련님과 똑같다. 실수로 떨어뜨리거나 물잔이라도 엎는 날에는
가슴철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패드2는 정상적으로는 고장이 잘나는 물건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란 걸 할 수 있지 않은가?
보통 '고객감동'을 시키겠다는 기업들은 사용자가 실수한 경우에도 비교적 적은 수리비로 해결해주든가,
때로는 공짜로 고쳐주기도 한다. 그러나 애플 제품은 다르다.



충격을 받았거나, 물이 들어간 아이패드2를 가지고 수리센터를 찾아가게 되면 정말로 새로 하나 사는 것과 마찬가지의 수리비를 요구받게 된다. 아무리 떼를 쓰고 화를 내도 소용없다. 서양식의 아주 쿨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그러니 소중한 아이패드2를 보호하며 쓰는 습관을 들이자.

어쨌든 이렇게 아이패드2는 매력적인 장점과 안타까운 단점을 모두 가진 기기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충분히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첨단제품을 두려워하지 말자.
본질을 파악하고 용감하게 써본다면 주위사람이 당신을 내일부터 다르게 볼 것이다.
(11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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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단체 가운데 '녹색당' 이라는 정당이 있다.
보통 정치적 의미의 정당이 주된 테마를 거창한 이데올로기로 삼는데 비해 녹색당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환경이다.
깨끗하고 맑은 환경에서 살 자유를 누리기 위한 모든 활동이 이 단체의 목표다. 국가가 먼저냐, 국민이 먼저냐 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정당 사이에서 이 녹색당은 오히려 신선한 돌풍을 몰고 오며 유럽 정치에서 의미있는 세력으로 존재한다.

 

종이책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면적으로 대체하고 있는 전자책의 대두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있다. 저마다 바라보는 관점과 이익이 다르니 여러 측면의 생각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의견 사이에서 '전자책이 지구의 환경을 보호해준다.'는 의견이 있어 눈길을 끈다.
 



어째서 이런 논리가 나오는 것일까?
우선 우리가 쓰는 종이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생각해보자. 종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원재료인 펄프가 있어야 하고,
그것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는 숲에서 베어내는 천연자원인데, 그 자체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드는 중요한
생물이기도 하다. 더구나 몇 개월로 금방 키워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펄프를 얻을 나무는 몇 년 이상은
키워야 한다.

그렇게 얻어진 나무를 가지고 펄프를 만드는 데는 또다시 석유나 석탄, 전기와 같은 에너지가 소비되며,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그 이산화탄소 말이다. 종이가 완성되면 끝일까? 아니다. 그것이 다시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인쇄, 제본, 유통, 판매를 거치는 데 모두가 그 과정에서 다시 전기와 석유 등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니 한권의 책이 제작되어 우리 손에 들어오기 위해서 소비되는 자원과 에너지는 매우 크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게 되면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대폭 생략된다.
종이가 필요없으니 애초에 나무를 베어낼 필요가 없다. 또한 인쇄과정이 필요없으니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으며,
유통과 판매 과정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하니 에너지를 소모할 일이 거의 없다. 이것만 봐서는 분명 전자책은 획기적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쓰며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된다.

전자책은 과연 환경보호에 도움이 될까?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전자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자원을 적게 쓰는 것이 아니다.

첫째로 전자책은 그 자체로는 가독성을 가지지 못한다. 무슨 말이냐하면 인쇄된 종이와 달리 단말기와 거기에 공급되는 전기가
없이는 볼 수가 없다는 말이다. 전자잉크는 그나마 전력소모가 적겠지만 아이패드같은 태블릿은 상대적으로 많다.
그리고 그 전기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역시 환경을 파괴하며 만드는 에너지다.


 
둘째로 전자책의 유통과 저장을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기업의 대규모 저장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른바 클라우드 시스템을 위한 데이터 센터다. 초고속 인터넷과 고용량 하드디스크가 빽빽하게 들어차 데이터를 주고 받아야
한다. 거기서 필요한 건 전기다. 

해외 뉴스에 의하면 구글과 MS등의 데이터 센터는 그래도 태양열이나 풍력 등의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하려고 애썼지만,
애플은 전혀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석유와 원자력 발전소의 전기를 그냥 가져다 쓴다. 덕분에 애플은 환경단체로부터
가장 환경에 해로운 기업으로 뽑히는 영예(?)를 얻었다.

전자책의 확산은 결국 나무와 석유를 쓰지 않는 대신 전기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모순이 있다.
수력발전이라고 해도 강을 가로막아 댐을 지어야 하는 환경파괴가 따른다. 화력은 석탄이나 석유니 말할 것도 없고,
풍력이나 태양열은 아직 발전량이 너무 작다. 그나마 강력한 에너지원이던 원자력은 지금 일본지진 사태에서 보듯 만일의 경우
지구 환경에 더 해롭다. 



전자책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더 증가한다는 건 환경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장의 종이나 석유 절약도 좋지만 전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거나 친환경 발전시설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안된다.
그런 것이 없이 그저 전자책이 저절로 환경을 보호해줄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건 아랫돌 빼서 윗돌에 올려놓는 상황 밖에
되지 않는다. 

앞으로 우리 모두 전자책과 함께 환경보호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

(11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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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한류에 빠지다!


얼마전 파리를 뜨겁게 달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놀라움과 자랑스러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콘서트를 위해 한국 가수들이 입국하는 날, 파리 샤를드골 공항은 엄청난 수의 한류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는
소식을 다들 들으셨을 거에요^^


입국 몇 시간 전부터 모여들기 시작하여 입국
장 입구를 꽉 메운 뒤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며 가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진풍경을 보여준 그들,
대표적인 문화선진국인 파리의 젊은이들이 한류에 이토록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1. 신선한 음악
 
첫 번째 이유는 젊은 세대들을 위한 음악이라는 점입니다.
젊은 층을 겨냥한 사랑, 이별, 우정 등의 소재가 흥겨운 멜로디와 어우러져 현대적인 매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기존 유럽의 음악과 다르게, 쉽고 재미있는 스타일이라는 점도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고해요.
때문에 유럽의 젊은 층은 거부감 없이 K-pop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2. 다방면의 능력
 
일본에서는 여성그룹이 대세인 반면, 유럽에서는 멋진 외모와 파워풀한 춤사위를 벌이는 핸섬한 남성그룹이 유럽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랜 연습으로 다져진 일사 분란한 무대 연출은 유럽의 가수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였나봅니다.
뿐만 아니라 연기나 예능에서도 다방면의 끼를 발산하는 모습은 더욱 프로의식이 강한 것처럼 보인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3. 대형기획사들의 세계화 전략
 
국내 대형기획사들은 어린 시절부터 유망주들을 발굴해 적극적인 투자를 펼치고 있습니다.
많은 투자를 한 만큼 높은 기량의 아이돌 그룹들이 탄생되고 있어요.국내에만 국한하지 않고 외국인 멤버를 포함시기고
다국적으로 스태프를 꾸려 전 세계를 겨냥한 전략이 통한것 같아요.
이번 프랑스 콘서트 역시 대형기획사의 힘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SNS (Social Networking Service)
 
마지막으로 국경을 초월하는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SNS의 발달을 빼놓을 수 없답니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 'You tube'를 통해 한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춤이 세계 곳곳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상황고, 국가간의
지역적 장벽이 허물어 지면서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K-pop의 매력이 어렵지 않게 발산되고 있어요.  






유럽에 일부 전문가들은 한류가 유럽을 ‘점령했다’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존재감 없던 K-pop이 유럽 문화의 한 갈래로 자리잡게 된 것은 확실해 보이는 것 같아요.
배우 중심의 한류 1세대를 넘어 아이돌 음악으로 확대된 한류 2세대의 맹활약상. 과연, 일본을 찍고 유럽으로 날아간
한류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11번가) 
^^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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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계절이 왔다! 산으로 바다로 놀러나가는 사람은 저마다 멋진 추억을 만들려고 한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니뭐니해도 추억을 기록하는 사진을 찍는 장치-카메라다.
오죽하면 '나중에 남는 건 사진뿐.' 이란 말까지 있을까?

그렇다고 이제는 한참 철지난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가기도 어색하다.
이제는 거의 사진 작가들만이 필름카메라를 쓸 뿐 디지털 카메라- 일명 디카가 대세가 되어 버렸다.
간편하게 찍어서 컴퓨터로 바로 볼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가면 딱 좋겠다.


 
 
그런데 고민이 있지 않는가? 요새는 갑자기 사람들이 평범하게 작고 가벼운 컴팩트 카메라가 아닌, 렌즈부터 커다랗고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DSLR, 풀어보면 '일안반사식 렌즈교환형 디지털 카메라'란 길다란 이름의 전문 사진가용 카메라다.
왜 그런 건 쓰느냐 물어보면 사진이 잘 나오기 때문이란다. 과연 어째서 얼마나 사진이 잘 나오길래?
비싼 가격은 부담되지만 내 모습이 모델처럼 이쁘고 멋지게 나온다면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폰에 내장된 카메라가 매우 훌륭하다고 한다.
간편하게 휴대폰 카메라처럼 찍을 수 있는데도 사진품질이 좋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이폰 카메라는 얼마나 좋을 걸까?
그리고 크고 무거운 DSLR 카메라보다도 좋은 걸까? 궁금증은 늘어가기만 한다.
그럼 여기서 그런 궁금증을 쉽게 하나씩 해소해보자.


아이폰 카메라와 DSLR 카메라, 어느 것이 우수할까?

 

본래 이 두 개는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권투에서 가장 가벼운 플라이급과 가장 무거운 헤비급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단지 한 가지 면에서가 아닌 다각도로 비교해보면 의외로 이 둘은 꽤나 재미있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1) 사진품질은 당연히 DSLR 카메라가 우수하다.

본래부터 사진으로 먹고 사는 기자와 사진작가들을 위해 나온 고가의 카메라가 바로 SLR 이다.
여기서 필름방식을 단지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했기에 DSLR이 된 것이다. 다양한 쓰임새와 특성을 지닌 비싼 렌즈와 필터를
한껏 사용해서 극한의 사진품질을 구현하기 위한 기기인 만큼 사진의 질은 아이폰 카메라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단순히 뛰어나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주위가 밝고 촬영조건이 좋은 곳에서 아이폰 카메라는 크고 무겁고
비싼 이 DSLR에 비해 그렇게 뒤지지 않는 좋은 사진을 찍어낸다. 엄청나게 큰 사이즈로 인화하거나 정교한 광학적 효과를 넣지
않을 거라면 아이폰 카메라로도 추억을 생생하게 담기에 충분하다.

 

단지 어두운 곳이나 대상이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 아이폰 카메라는 부족함을 많이 나타낸다.
DSLR은 손떨림방지 장치, 빠른 촛점잡기 기능, 빛을 많이 받아들일 수 있는 렌즈, 초고감도 촬영기능를 통해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지만 아이폰 카메라는 이런 기능들이 없거나 부족하다.


2) 휴대성과 활용성에서는 아이폰이 압도적으로 우수하다.

세상에는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원한다면 크고 무거운 카메라
본체와 렌즈를 등짐처럼 짊어지고 허덕거릴 각오가 모두 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폰 카메라는 그런 면에서 매우 스마트하다. 아이폰에 기본으로 내장되어 있기에 추가 비용이나 무게가 전혀 없다.
또한 렌즈를 교환하거나 추가 메모리 카드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언제 어디를 가든 따라오면서도 간편하게 바로 꺼내서 찍을 수 있다.

전문 카메라인 DSLR은 결코 사진을 간편하게 찍을 수 없다. 평소 카메라를 보호해주는 가방에서 꺼내서는 렌즈캡을 열고
전원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고는 바로 배율을 조정하는가 하면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확인해야하고, 때로는 감도와 렌즈 종류까지 신경써야 한다. 찍어야할 대상에만 신경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편하게 즐겁게 찍기가 힘들다.

 
 
그런 면에서는 아이폰 카메라의 승리다. 아이폰 카메라는 기본적으로 다른 스마트폰에 비해 상당히 우수한 특성을 지닌 카메라
부품을 썼다. 게다가 앱스토어에 가서 카메라 앱을 구입해보자.
찍은 사진을 변형하고 합성하며, 뽀사시 효과를 넣는 등의 재미있는 활용이 가능하다.
일상의 도구이자 좋은 장난감이 되는 것이다.


3) 진지한 사진을 찍고 싶을 때는 양쪽 모두의 장단점이 뚜렷하다.

만일 사진전에 출품할 수준의 작품사진을 찍고 싶거나, 어두운 실내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한다면 아이폰 카메라로는 힘겹다.
DSLR이 훨씬 좋다. 밝은 렌즈와 다양한 셔터스피드의 지원으로 인해 폭넓은 표현을 가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일상의 자연스러운 광경을 수시로 찍어서 진지한 작품으로 남기고 싶다면 오히려 아이폰 카메라가 좋다.
크고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는 찍는 사람뿐만 아니라 찍히는 사람까지 긴장시키고, 호흡을 깨뜨린다.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한 사진이 나오기 쉬운 것이다. 오히려 작고 부담없는 아이폰 으로 인해 긴장을 푼 상대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반응을 찍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이폰 카메라와 DSLR 카메라는 각자 우수한 점이 있다.
국내 카메라잡지 DCM 에서는 전문적으로 캐논의 구형 중급기 40D와 아이폰 카메라를 비교한 기사를 낸 적이 있다.
거기서는 다이내믹 레인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아이폰과 40D가 비슷하다는 호의적 평가를 낸바 있다.
따라서 자기에게 필요한 용도를 따라서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11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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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게임에 대해 다시 안좋게 보고 규제하려는 인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게임에 셧다운제도를 도입하려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금을 걷어 게임중독증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겠다는
발상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게임을 마치 담배나 마약같은 유해물질로 규정하는 생각에서 나왔다.

사실 중독으로 따지면 인간은 무엇에나 중독될 수 있다. 아침드라마에 중독될 수도 있고, 책에 미칠 수도, 음악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에 셧다운제도를 도입할 수도 없다. 다만 요즘 추세인 온라인 게임이 좀더 강한 중독성을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럼 무엇이 이렇게 온라인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 중독성을 보이도록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온라인 게임이 보여주는 현실성- 리얼리티에 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예술은 현실의 형이상학적인 보완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도 새로운 예술 형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니체의 말은 컴퓨터 게임과 관련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니체가 말한 ‘현실의 보완’이란, 우리가 현실에서 맛보는 아름다움이나 감동을 더욱 바람직하게 가공하는 것을 뜻하는 걸까?
그래서 꽃의 아름다움을 더욱 과장해서 그림으로 그리고, 봄의 생동감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선율을 만든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예술로서의 게임은 어떤 것을 보완해 주는 것일까? 과연 요즘의 게임은 스스로가 예술이라고 자각하고 있을까?


최근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장르는 뭐니 뭐니 해도 MMORPG다. ‘여럿이 접속해서 즐기는 역할 수행 게임’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 게임은 매우 강한 개성을 지닌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나 <리니지2>, <아이온> 같은 게임이
대표적인 MMORPG이다.
이들은 각각, 완결된 게임 세계를 구축한다. 판타지가 주류지만 무협이나 SF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게임도 있다. 이런 세계를 구축한 서버에 접속한 사용자들은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어 그 안에서 모험을 하고 돈도 벌며 미션을 수행한다. 때로는 싸움도 하고 대규모 전쟁도 벌인다.


 

세계관이 다를 뿐,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연애도 하고, 때로는 살인도 한다. 사냥과 돈 거래도 가능하다.
특별히 사용자에게 강제로 어떤 스토리를 강요하지 않기에 이야기는 각자의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간다. 이렇게 되면 게임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게임 자체가 하나의 사회가 된다.


MMORPG에 빠지는 게이머들은 모두 이런 점에 매혹되어 있다. 현실에서는 그저 단순한 직장인이고, 학생이고, 백수에 불과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기사나 마법사, 엘프가 되어 다른 종류의 인생을 살아 볼 수 있다. 더구나 자기가 하기에 따라서는 ‘멋진 인생’도 만들 수 있으니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게임들은 부작용도 가지고 있다. 이 게임들의 ‘리얼함’과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결합할 때 부작용은 두드러진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통용되는 공식 화폐는 ‘아덴’이다. 주로 사냥이나 장사를 통해 모을 수 있는 이 돈은 마치 실제의 돈처럼 현실에서 그대로 환전된다. 아이템이나 장비도 몇 십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 현실에서 흥정된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아덴과 (현실) 원화의 공식 환율까지 등장하자, 게임방 주인이 아예 손님을 받지 않고 알바를 고용해 하루 종일 아이템과 돈만 수집해서 그걸 현실 속에서 팔아 돈을 벌기도 한다. 게임이 이렇게 돈이 되니, 그 안에서도 현실 사회와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 부를 독점하기 위해 힘 있는 캐릭터와 세력이 뭉쳐서 특권 계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리니지1> 첫 번째 서버인 ‘바츠’ 서버에는 혈맹이라고 부르는 단체들에 의해 (돈을 벌기 위한) 무자비한 폭정이 펼쳐지는 철저한 계급 사회가 생겨 버렸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게이머들이 제작사에 항의했지만 제작사의 답변은 ‘게임 속의 일에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란 것이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게이머끼리 어떻게 치고 박든 현실적으로 자기 회사의 수입에는 영향이 없기에 별 문제가 안 된다. 사석에서 어떤 게임 제작자는 ‘우리는 더욱 리얼한 게임 세상을 만들길 원한다. 그러니 아이템이나 장비가 돈이 되는 것도 좋다. 모든 것이 사회와 똑같도록 만들고 싶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사회의 모순까지도 그대로, 혹은 더 심해도 좋으니 ‘리얼한’ 게임 세계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견디다 못한 하급 게이머들은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당시 바츠 서버를 지배하고 있던 혈맹을 향해 반기를 든 것이다.
캐릭터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이 벌어졌다. (서로의 근거지인 성을 공격하는) ‘공성전’이라는 형식으로 치러진 이 전쟁에서 수많은 저 레벨 캐릭터들은 인해 전술을 구사하며 ‘몸을 던지는’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이른바
‘내복단’이라고 불렸다. 옷이나 장비를 살 돈이 없는 1레벨 캐릭터라 그저 내복 하나만 입고, 뼈로 만든 ‘뼈검’ 하나를 든 게 다였기
때문이다. 거지 떼나 다름없었다. 이런 캐릭터들이 천만 원을 호가하는 철제 갑옷을 입고 수백만 원씩 하는 무기를 든 기사와
비싼 아이템을 사용하는 마법사 등에 개미 떼처럼 달려들었다. 내복단이 원하는 건 공정한 세상이었고 그들이 원하는 건 바츠
서버의 해방이었다.


그래서 이 전쟁은 ‘바츠 해방 전쟁’이라고 불렸다. 배신과 좌절의 수많은 사연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바츠 서버는 해방됐다.
‘내복단’과 저(底)―레벨 캐릭터들의 게임 속 ‘혁명’은 성공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바츠 해방 전쟁’이란
키워드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이제 문제는, 게임의 ‘리얼함’이 갖는 함의다. 물론 제작사의 입장에서야 어떤 것이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정답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만 말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는 이미 수많은 모순이 있다. 부의 독점, 권력형 부패, 생명의 경시 등 너무도 많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요소들까지 ‘리얼함’이란 명목으로, 게임 세계에 들어오고 있다.
 



‘결국 악당이 죽고 주인공이 이길 거야.’, ‘어차피 아이와 동물은 안 죽어.’ 우리는 영화를 보며 헐리우드 영화의 법칙에 대해
야기한다.
과연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이 ‘리얼함’이라는 가치를 몰라서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 걸까? 그건 아니다. 그들은 최소한 영화에서나마, 정의를 구현하고 꿈을 보여 주기 위해 약간의 비난이나 비아냥거림을 감수하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상업 영화조차 이렇게 리얼함을 희생해서 꿈을 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오늘날, 나름 ‘예술로 인정받고 싶다’는 장르인 게임은,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와 광고비를 들이는
MMORPG는 오로지 돈만 벌 수 있다면 꿈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오로지 ‘리얼한 게임을 위해서’란 명목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건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부와 권력의 지나친 집중은 유혈 혁명과 폭동을 불러일으켰다.
게임에서까지 그런 ‘나쁜 리얼함’을 맛봐야 할까? 그래서 게임 속에서까지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죽어야 할까?


온라인 게임의 리얼리티, 한도가 있어야 한다.

나는 적어도 온라인 게임에서는 셧다운제도 같은 형식적 규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본다. 나는 내용적으로 지나치게 ‘리얼한’
게임에 반대한다. 게임은 꿈과 희망에 가득 차야 한다느니, 미성년자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느니 등의 고리타분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단지 게임 속에서조차 이 사회의 처절한 계층 차별을 되풀이한다면 그 해결책으로 나올, ‘유혈의 혁명’까지 실제 사회에 전이될까 봐 두렵다.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와 선거, 보편적 투표권과 그로 인한 평화는 거저 생긴 게 아니다. 바로 ‘바츠 해방 전쟁’과 같은 민중의 노력과 혁명, 폭동이 계속되면서 얻어진 것이다. 민주주의는, 부자는 그들이 더 많은 것을 탐내면 아예 사회가 전복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난한 자는 혁명이란 극한 상황으로 평화가 깨지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두려움에 서로 합의한 제도이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런 합의가 없이 그저 폭력만 있을 뿐이다. 리얼한 게임이 도리어 ‘리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포함한 모든 게임에서 진짜 ‘리얼함’을 살리고 싶다면, ‘사회적 합의 과정’도 모델링해 넣어야 한다.
개인의 욕망을 무제한적으로 해방시키는 방식의 그릇된 리얼함을 고집할 경우 ‘바츠 해방 전쟁’과 같은 혁명만이
해결책이 될 것이다.


온라인 게임의 리얼리티는 규제되어야 한다. 그 안에서까지 펼쳐지는 황금만능주의, 부의 독점, 약육강식의 논리는 오히려
게임몰입 그 자체보다 청소년이나 어른에게 미치는 폐해가 크다. 사회가 병들어있는데 게임속에서는 더 병든 사회가 욕망을 부채질한다. 여성단체는 오히려 이런 진정한 문제점을 모르고 한심하게도 게임 자체를 적대시할 뿐이다. 오히려 적절한 룰이 있는 가운데 사회성이 있는 좋은 게임은 사람들의 유대를 강화시키고 올바른 인격형성에 도움이 된다. 정의의 기사가 이기는 쾌감이나 환상적인 마법사가 꿈을 펼치는 것은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있지만 유익하다.

 
리얼한 게임이 만든 게임 속의 혁명.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리얼한 게임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묻게 한다.
리얼리티를 절제한 게임이 오히려 진정으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게임'인 것이다. 

(11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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